교육·연수

기업, 단체, 자영자 등.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2010년 이후 시작했습니다. 약 15%, 이들 인구의 규모로 인해 이들의 은퇴가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퇴직자들은 지식기반의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애설계 및 퇴직고려에 대한 계획행동은 잘 준비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퇴직 전 직원들 또는 조직원들의 자존감, 사회적 지지, 퇴직소득계획, 퇴직생활설계, 미래스트레스, 삶의 만족도, 심리적 웰빙 수준 등을 고려하여 보다 안정적인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서울 교육연수 (2박3일) 고궁 문화 연수 {세계가 훈민정음 한글을 배우다}

조선 왕조 역사 문화 탐사 

 

 

연수 비용 :  서울 호텔 식비 연수비 포함 2박3일 2인실 520.000원 1인실 695.000원
입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4-665175 (예금주 : 한국교육개발연구원)
문의  :  09:00~18:00 대표전화 1577-6180 ( ketc1001@naver.com  )담당자 이은정  010-6518-2227
• 참조 : 서울 연수 오실 때는 휴대폰 충전기, 치솔, 치약은 챙겨 오십시오. 

 

 교육전문가와 함께하는 궁 감성 연수 대학로 공연

 

 

1일차 
11 : 30  서머셋 팰리스호텔 집합 세미나 (기수 단톡방 초대 10일전 개설 안내)체크인 방배정
12 : 00  중식 인원 점검  인솔자( 김0정 본부장  :  010-6518-2227)

13 : 00  팀별 토론 은퇴 후 20년 재무 관리 교재 배포 

14 : 00 경북궁  현장체험 후  자유시간

17 : 30  현장체험 자유시간

17 : 40  인사동 익선동 팀별자유 석식

             숙소 휴식~
 

조선왕조 찬란했던 정치,경제,문화를 꽃 피웠던 곳

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에 창건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法宮)입니다.

 

경복궁은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하였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의 이름은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이곳에서 세종 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반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경복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는데 그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가 270여년이 지난 1867년(고종 4)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고종 대에 들어 건청궁과 태원전, 집옥재 등이 조성되었으며, 특히 건청궁 옥호루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경복궁은 계획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되었고,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의 경관을 훼손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였으며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복궁 광화문->홍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경회루->강녕전->교태전->자경전->향원정

 소요시간: 약2시간

 

2일차
07 : 30  호텔식 조식 
09 : 30  현장직무교육 창덕궁 창경궁  

12 : 30  중식 

13 : 30  창덕궁 걷기 생활 체육 현장 학습 자유시간

15 : 30  감성 현장 직무 연수 대학로 연극 공연 인기순 3위 이내 선정

17 : 00  대학로 공연 연극 120분  공연후 자유시간

            석식  맛집 팀별 자유석식   대학로.  인사동, 익선동

           숙소 서머셋 펠리스호텔 휴식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昌德宮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습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순종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되었고 1463년(세조 9) 확장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인조 대부터 순조 대까지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애련지, 의두합, 연경당 등이 추가로 조성되면서 창덕궁은 정치의 공간과 더불어 휴식과 생활의 공간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창덕궁은 창경궁(昌慶宮)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돈화문-  금천교-   옥당-  인정문-

인정전- 선정전- 대조전- 희정당-성정각-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옛 수강궁에 창건한 효의 궁궐

                                                             창경궁昌慶宮

 

  

창경궁은 원래 1418년(세종 즉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창경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중건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4년뒤에 중건 하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심하였습니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한 후,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창경궁은 남향으로 있는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자경전 터-  집복헌- 경춘전- 함인정- 명정전-

 

 

 

이런 공연 어때요?

살아있는 감동을 선사할  대학로 공연

 

   
 

 

3일차
08 : 30  호텔식 조식   

09 : 00  현장학습 체험 출발 (덕수궁)

10 : 30  감성 현장 직무 교육 덕수궁 돌담길 걷기 체험

12 : 00  중식

13 : 00  안전한 귀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 전통과 근대가 만난

                                                            덕수궁德壽宮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습니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습니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황궁에 맞게 규모를 확장하고 격식을 높였으며, 궁궐 내 서양식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전통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궁의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덕수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습니다. 동시에 공원화가 진행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게 되었습니다. 1946~47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덕수궁의 복원이 꾸준히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아쉬운 2박 3일 연수을 뒤로 하고 별 탈 없이 소중한 선생님과 현장연수를 마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도착하시면 단톡방 메시지 남겨 주시고 후기 사진도 올려 주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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